“그거 참 비싼 쇼핑카트네.”
열병에 걸린 것 마냥 다소 충동적으로 포틀랜드로 이사간 후, 우리는 서로가 그토록 바라는 대로 도시 골목과 길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 덕분에 차로 30분 거리의 한인마트로 장을 보러 갈 일이 아니면 자가용은 일주일에 한 번 운행을 할까 말까였으니, 마칸에 매달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직장 동료랑 얘기하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결국 고민 결단하여 현재 차를 보내고 철저하게 도구로서,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새로운 차를 구하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기아 소울을 구하자는 내 최초 바람과는 다르게 아내는 사륜구동을 바랬고, 여러 딜러십을 수소문 한 결과 지프 레니게이드 깡통을 찾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마칸을 몰고 기아 딜러십에 가서 스포티지 깡통을 찾자 나를 바라보던 딜러의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분명, ‘이 동양인들은 파산한건가?’ 생각했을거라 짐작한다.
아마존에서 구한 싸구려 루프 바스켓, 중고로 구한 루프탑 캐리어, 이베이에서 구한 여분의 연료탱크, 삽, 그늘막 등등. 콘도에 살았기에 이런 악세사리들을 따로 보관이 어려워 운행하면서 항상 달고 다녔다. 포틀랜드에서 이런 자동차 용품들 (특히 루트탑 캐리어) 은 국룰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차피 우리 둘만 탈 차였기에 뒷자선 의자는 빼버렸다. 이 차는 뒷자석을 뉘여도 평탄화가 안되었거든.
포럼에서 찾은 sleeping platform을 찾아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차박을 몇 번 하더니 결국엔 중고 텐트를 구했지만. 타이어는 원래 달려있던 all seasons tires 가 얼추 수명 다하면 바꿔야지 하는 생각으로 all terraine 으로 바꾸지 않았기에 결국 무리한 주행에 펑크가 나버려 소중한 주말 한 번이 엉망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마저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시 베가스로 이사를 오고 나서 머피 (애칭이었다)를 보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차를 그리워한다. 이 차는 정말 우리 둘 만의 대책없는 여행의 동반자였고 짧지만 수풀 사이를 헤집고 지나며 흠집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며 보닛 위를 타고 올라 짐을 실어도 걱정 없는 내 마음 한 켠의 편안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차로 틈날 때 마다 맹목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버린 기억이 무궁무진 하니까. 조그마한 차체에 연비는 엉망이었고 장시간 운전하면 귀가 아플정도로 실내 정숙성은 정말 시궁창에 처박은 빌어먹을 자동차였지만 언제금 또다시 다가올 시간에 설레임을 안고 뒷공간 가득 여행짐을 싣고 떠날 수 있는 꽃마차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