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올 해 리더십 목표만큼 cross functional team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해. 혹시 아이디어 있어?”
이 양반이 또 시작이다 싶었다. 매니저를 떠나 디자이너 짬밥이 있을 터인데 우리 매니저의 방향성은 너무도 광범위했고 실체는 몹시 흐릿했으며 계획은 구체적이지 못했다. 의도의 좋은 목적은 알겠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몇차례 작은 마찰이 있었던 터, 솔직히 터놓았다.
“그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너 뿐만 아니라 다른 매니저들도 그런 높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는거 알겠는데, 실무자로서 말하자면 다른 팀과 협업할 때는 A to B 처럼 진행되지 않고 수많은 변칙적인 상황과 예상치 못한 제약에 부딪힌다고.”
“훌륭한 피드백 고마워. 좀 더 구체적인 제안 좀 풀어봐.”
“어차피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거니까 관계가 우선이어야지. 암만 가이드라인이나 키트를 제공한다 한들 모르는 사람이 자기 디자인에 이래라 저래라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내가 항상 관계개선을 목표로 한다는거야. 그리고 이런 신뢰관계는 시간이 걸려. 그래야 다른팀 사람들도 같은 동료로서 더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깊숙히 관여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네 생각에는 디자이너가 더 필요하다고 봐?”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 그보다는 우리 팀 만의 PM이 필요할거 같은데.”
“그건 불가능해. 좀 더 offce hours (일정 시간동안 누구든 와서 협업할 수 있는 미팅) 를 가져보는건 어떻게 생각해?”
“그건 이미 잘 진행하고 있지만 난 이미 굉장히 바쁜데, 업무정리도 문서화도 해야하고. 누군가 이걸 해줄 수 있으면 난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지.”
“내 생각엔 너가 office hour를 좀 더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그 때만 협업하게끔 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체계화 하는게 단순히 채팅보다는 나을거야”
이게 무슨 답정너인가. 그리고 말로 하면 뭔들 못하나. 머릿속 불분명한 계획만 가지고 성공할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나는 벌써 대부호가 되었을 것이다. 자동화고 체계화고 나발이고 간에 사람들이 애초에 그걸 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라고. 당장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개미 눈꼽만큼도 없지 않은가. “지구 온난화를 멈추기 위해 화석 연료를 쓰지 마세요!” “가게 매출이 떨어졌다고요? 손님을 더 끌어와야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대안과 준비가 없는 전체론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요즘 미취학 아동들도 안할거다. 게다가 그건 매니저 당신이 할 일이잖아. 차라리 벽 보고 말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냥 따봉 누르고 답장도 말았다.
우리 팀 매니저는 내가 알기론 이번에 처음 매니저 직급으로 부임한 것으로 알고있다. 이 양반은 분명 리더십이라는걸 책으로 배운게 분명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등을 돌리는 마당에, 나도 적당히 장단만 맞춰주고 그냥 가늘고 길게 가야지.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이런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 또다른 ‘피해야 할 표본’ 하나가 늘었으니 마냥 손해만 보는 건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