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포틀랜드에서 이사 오면서 망가진 어쿠스틱 기타. 브릿지가 붕 떴었다. 고친다고 했다가 어설프게 목공본드를 잘못 발라 더 엉망이 되어 있던 터에, 그냥 버리고 새로 하나 구할까 싶다가 생각해 보니 이것조차도 살 때 200불 주고 샀던 게 기억났다. 차마 고상한 취미에 200불은 고사하고 20불도 함부로 쓰기 껄끄러워지던 차, 다시 고쳐볼까 하면서 엉터리로 마무리된 브릿지를 걷어내고 샌딩기로 평탄화시켰다.

그 와중에 아주 예전에 페인트 마커로 낙서를 한 흔적들을 보았다. 참 성의없게도 해놨구나. 한 번 하는 거 좀 더 진득히 붙잡고 그려 보지. 그래서 제대로 한 번 해볼까 싶은 욕심에 알콜로 낙서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샌딩기로 사운드박스 겉표면을 살짝 긁었다. 그리곤 젯소를 캔버스 마냥 표면에 발라 건조시켰다.

아이패드로 낙서와 디지털 일러스트는 아주 가끔 해 왔지만 붓을 다시 잡는다는 건 무언가 내 나름대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덕분에 캔버스에 배경까지 완성해 놓은,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그 어떤 구상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워져 차고 구석에 처박아 놨던 미완성의 그림과 재료들.

며칠 더 고민한 끝에 내가 항상 좋아라했던 아름다운 하늘의 풍경과 앙상한 나무를 주제로 다시 한 번 붓질을 시작해 보고 있다. 10개 묶음에 10불도 안 했던 싸구려 붓 중 적당한 거 하나 집어들어 한가닥 한가닥에 다시 예전처럼 집중하며 천천히 그려 나가고 있다.

며칠 후 당신께 이별을 고한 지 돌고 돌아 또 한 해가 지나간다.

전 잘 지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잘 지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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