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야영

아내가 출장을 간 사이 그간 이루지 못한 거룩한 목표를 달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바로 솔로 캠핑. 캠핑을 시작한 이레 혼자 캠핑을 가본 적 없기에 이제는 제법 경험이나 장비가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루지 못한 동경의 대상, 남자의 로망이랄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유타주의 어느 한적한 캠핑장으로 좌표를 잡았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될 지 몰라 고민보다는 결단으로 짐을 챙기고 홀로 떠난 여행.

집을 막 나선 차에 도끼를 까먹은 바람에 부랴부랴 집으로 다시 돌아가 챙겨오는 통으로 10분을 허비했지만 2시간 반 정도의 여정은 나름 순탄했다. 처음으로 당도한 도시에서 뗄감을 구하고 가볍게 챙길 통조림도 구입. 물가가 우리동네보다 저렴한 덕에 현지조달 하길 잘했다며 스스로 칭찬하고 캠핑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놀라울만치 아무도 없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남성미를 뽐내며 인증샷. 계획대로 캠핑장 주변 저수지를 자전거로 돌아다닐 계획이었거든.

자전거로 주변을 다니며 간간히 사진도 찍고 하길 한시간 정도, 그런데 문제는… 장갑을 두고 온 것이다. 동계야영은 꽤나 오랫만이라 당연히 방한장비 구성에 장갑도 있을거라 추측하고 그걸 그대로 들고왔는데 생각해보니 저번에 장갑만 거기서 쏙 빼고 온 걸 깜빡했다. 하는 수 없이 얼얼한 손을 참아가며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캠벨 캔푸드가 꽤나 궁금했는데 개중 $1.50 으로 할인행사 하는 걸 집어왔건만 맛은… 산 속에 조난당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굳이 찾아먹을 수준은 되지 않았다. 헌데 그 베이스에 짜장라면을 끓이니 요리에 가까운 음식이 되었다. 음. 이 레시피는 추천.

그리고 밤은 추웠다. 모닥불 곁에 있을 땐 꽤나 버틸만 했는데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무슨 혹한기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 사서 고생이란 말인가. 동계침낭은 사람을 동사시키지 않을 정도지 온기를 충분히 느낄만한 보온이 아니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새벽에 텐트 밖에서 부스런 거리는 소리에 깨고 말았다. 사람인가? 헌데 소음은 꽤나 규칙적이다. 마치 우리집 고양이가 변소보고 모래덮는 그런… 차라리 짐승이면 낫다. 사람이면 정말 무서운 것이다. 더욱이 이 캠핑장에는 호스트도 없고, 다른 야영객도 없고 오직 나 뿐이니까. 얔! 하고 소리 지르니 조용해졌고 다시 잠을 청했다.

동이 트기 직전 빨리 철수하고 싶어 아침을 먹기로 했다. 캠핑 다음 날은 무조건 라면이지. 평소에는 잘 쓰지않는 프로판은 이런 저온의 상황을 위하는 것이다. 부탄은 저온에 취약해 화력이 나질 않는다. 뜨거운 라면국물에 속을 든든히 하고나니 마실 물이 얼어있었다. 대충 챙겨온 쿨러 안의 콜라로 속을 달래고 장비를 접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집이 최고다’ 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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