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낭만으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것은 취미로 하되 정말 잘 해낼 일로 돈을 벌라고. 그렇지 않고 그저 좋아하고 사랑함에 자신의 생업을 걸게 되면 지치게 되고 그 사랑 마저도 시들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는 이 말을 무척이나 믿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쓰시던 수동 필름 카메라를 시작으로 첫 입문용 DSLR을 2010년에 구한 후 쭈욱 취미로 가볍게 사진을 찍어오다 2016년에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나서 (학위를 마무리하진 못했다) 기회가 닿아 포토그래퍼로서 겸업을 했었다.

원체 좋아하던게 사진이었던지라 이론과 실기를 기반으로 참 열심히 했더랬다. 대단한 광고의뢰나 수준높은 예술성을 담은 사진들이 아닌 그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개인손님의 의뢰를 받고 더러 디자인 작업 의뢰의 부분으로서 촬영한 것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지금 다시 그 때 촬영한 결과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때 내 사진기술이나 완성도는 정점을 찍었다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 당시에 신분 등 내게 닥친 여러 어려운 상황들과 함께 뜻하지 않은 손님의 컴플레인과 수입의 괴리감이 맞물려 어느 순간부터는 ‘이 돈도 안되는 걸 가지고 뭘 하고 있나’ 싶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내 상황에서 포토그래퍼로서 활약할 수 있는 시장은 제한적 이었고 그 마저도 레드오션에 가까웠으니까.

현실의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고 더불어 내 본업인 디자이너로서의 삶도 궤도에 안착되었을 무렵,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 다시는 돈을 따라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Landscape, still life, and people. 그저 내가 오롯히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 내가 스스로 원해서 담고싶은 것 들만 피사체로 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억하고 공유하겠다며 이미 진작에 초라해진 사진이라는 의미에 약속했다.

이후에 몇 번의 촬영 의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난 이제 돈 받고 촬영 안한다고. 차라리 주변에 알고있는 다른 포토그래퍼를 소개시켜 준다 했다. 그래도 한 번 촬영 나가면 돈 오백불 천불 받는데 그게 아쉬울 법도 한데, 배부른 소리일 지도 모르지만 비로소 나는 내가 원래 사랑했던 그 무언가를 대면할 기회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까짓거 돈이 아쉬우면 프리랜스 디자인 프로젝트 하나 더 뛰지, 더 이상 고통과 우울감 속에서 카메라를 손에 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아직 사진을 찍고 있다. 풍경을 담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일상의 모습을 기억하고 여행지의 설레임을 기록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이제는 극한까지 올라온 이 시대에서 조차도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른다. 이제 이 걸로 돈을 벌 필요는 없어, 하지만 촬영의 감각과 기술은 기억해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녹아든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주변에게 함께 웃으며 공유하고 저장장치에 정리해서 보관한다. 그리하여 내 사랑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Posted

in

by

This Post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