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 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학교에 입학 전, 룸메이트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샌 프란시스코는 처음 간 것이었고 남자 세명이서 10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교대로 운전해 도착한 그 곳은 운전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눈길이 닿는 모든 모습 자체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리 곳곳은 도시의 역사 만큼이나 흘러온 시간을 가늠케 해주었고 골목마다 당시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창의성이 가득했다.
“여긴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도시야. 나는 반드시 이 곳에 와야해!”
짧은 여행기간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설레임과 기대를 품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 Craig’s List를 통해 찾은 하숙집을 찾아 이사를 했다. 낡은 내 차에 이사짐을 잔뜩 싣다 못해 루프랙도 없는 차 지붕에도 어설프게 짐을 올려놓고 얼기설기 비닐을 씌운 모습이 여간 우스꽝 스러웠지만, 내 삶의 전환점일 수 있다는 목표와 여행 당시에 도시가 보여준 바이브는 나에게 이미 밤 하늘의 별들 만큼이나 화려하고 무수히 많은 그 무언가를 약속하는 듯 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하지만 순간의 손님이 아닌 내 삶을 지탱할 일상이 되자 내가 기대하고 꿈꿔온 그 모든 것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저렴한 월세방을 구했기에 나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캠퍼스에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을 움직여야 했다. 도시의 끔찍한 물가는 사람이 먹는 한 끼의 식사를 카레로 만들어진 인간사료로 만들어 버리기엔 충분했으며 그 마저도 지출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 고봉밥에 분말로 한 가득 만들어 놓은 카레를 퍼먹고 수업 후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또 카레를 먹었다. 비싼 학비와 재료비 비례 내 일상의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부분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잊혀져 갔다. 손에 닿을 듯 아름다웠던 도시의 풍경은 그저 무대를 꾸미는 배경소품처럼 저 멀리 내 삶에서 멀어져 갔고, 화려한 거리는 더 이상 내겐 아무런 영감을 가져다 주지 못했으며 그저 난잡하고 조잡한 영상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찰나의 순간에 스스로 계획한 수많은 이상적인 목표와 계기들은 빠듯해진 여유 만큼이나 빠르게 소멸해 갔다.
한 때 바라본 꽃밭의 풍경은 그저 한 때의 내가 본 것일 뿐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좀 더 스스로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그 순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그때 그 삶의 전환점과 기회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품지 않았을까.